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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1 비오면 생각나는 음식들 (4)
나에게 비오는 날의 음식이란,

감자 부치개!

시골 살던 시절 엄마는 왠일인지 비가 오면 가장자리가 바삭한 감자전을 구워주셨었는데,
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 뒤로 죽 이어져서
지금은 혼자서 감자 갈아서 부쳐먹으면서 즐거워라 한다지.

이런 식의 기억이란 참으로 질긴 것이어서
정말 빗소리 들으면 자동적으로 약간 고소한 기름 냄새와 강판에 간 감자 특유의 가볍게 서걱거리는 식감,
그리고 가장자리 좀 더 익은 부분의 바삭거리는 소리까지
한큐에 떠오르는 거지.

우선 냉장고를 열어서
몇 개나 감자를 깎을까를 고민하는 순간부터
호박이 있으면 호박을 채치고 부추가 있으면 부추를 짧게 썰어서
운 좋게 고추가 있으면 곱게 동그랗게 얹고
아무것도 없으면 그것도 그것 대로 하얀 상태로
달걀과 밀가루, 소금을 넣고 반죽해서 잠시 기다린 다음에
맨 위에 떠오른 물을 따라내는 거지.

기다리는 동안 달궈놓은 팬에 치익~하고 두르는 것은 절대로 콩기름이어야 한다.
요즘은 입에 달고 몸에도 좋다는 포도씨유에 올리브유병이 훨씬 더 자주 손을 타긴 하지만
왠지 전을 부치는 것은 이 콩기름이 아니면 안된다.
그 쫀득거리면서도 바삭거리는 식감과 약간 구수한 감자 누룽지 특유의 냄새는
이 콩기름이 아니면 만들어지지 않는 게다.

크게 한 국자 떠 넣고 점점 밖으로 둥글게 펴는 과정에서
이미 옆으로 튄 감자 방울은 부글부글 익어가면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고
윗면이 말랐다 싶으면  뒤집개를 가지고 잽싸고도 고요한 움직임으로 그 널쩍한 전 전체를
훌떡 뒤집어야 성공인게다.

밀가루와 달걀을 좀 더 넣으면 더 쉽게는 뒤집을 수 있어도
감자전 특유의 부드러운 맛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 미묘한 차이를 본인의 입맛에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감자 위주로 만들면 뒤집개를 넣는 순간 이미 찢어져버리는
내겐 너무 약한 감자전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꺼내기 전까지의 고민은 단 하나다.
바삭바삭한 가장 자리를 얼마나 만들 것인가.
좀 더 두면 좀 더 바삭바삭한 가장 자리가 많이 생기긴 하지만
너무 익으면 수분이 많이 증발해서 전체가 질긴 느낌이 나게 된다.

어렸을 때는 이 바삭바삭한 부분을 누가 많이 먹나를 두고 동생이랑 정말 치열하게도 싸웠다.
이따금 왠일로 착한 마음이 들어서 양보할때는 진짜 있는 생색 없는 생색을 다 냈던 기억이 나서
혼자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귀가 벌개진다.

지금은 먹는 걸 두고 그렇게 다툴 사람도 없거니와
먹을거에 대한 그만한 열정도 사실 사라지고 없는 듯 해서 조금 아쉽지.
그러게 차지한 가장자리는 진짜 맛났었는데 말이다.

비오는 저녁에 밥을 먹고 퇴근을 해 보니
왠지 그 감자 부치개 부쳐 먹을까 하는 향수가 불쑥 올라오다가도
지금 먹으면 잠 편히 못잘텐데 하는 어른스러움에 이내 안 그런 척 한다.

그려 이번 주말에 만약에 비가 오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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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ed by 박양 at 2008.09.02 20:37

    아직도 밥 먹을 때 어쩌다 감자전이라도 시키면 가장자리먹는 데 혈안이 되 있는 걸.흐흐.

  2. Commented by 정혜경 at 2008.09.08 17:12

    오옷! 이 어찌도 그리 똑같은 감수성을 발현시키는 매개체인가! 바삭거리는 가장자리에 대한 집착까지도~
    여름방학이라도 될라치면 여럿이서 둘러앉아 도란거리며 강판에 갈아서 부쳐먹는 재미도 있었는데..

    난 근래 감자 옹심이란 것도 만들어보았단다..매콤한 국물속에서 쫄깃거리는 감자맛이 늠늠 좋았다는..